제1장 첫 키스 — 「대학교 후배녀」와의 공원 데이트
남들도 다 그랬듯이 조영광에게도 풋풋한 순정의 첫 키스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영광이는 남녀 관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던 앳된 대학생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초반의 어느 화창한 봄날, 영광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교내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평소 오후마다 땀을 뚝뚝 흘리며 혼자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영광이는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800미터와 3,000미터 중·장거리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운동회 날만큼은 운동을 잘하는 남학생이 여학생들에게 수컷의 씩씩한 본능을 한껏 보여 주며 점수를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영광이도 호남형 얼굴에 말근육 같은 허벅지를 마음껏 자랑하며 운동장을 누볐다. 여학생들은 흠모의 눈길을 보내며 응원의 박수를 짝짝 쳐 댔다. 그중에는 같은 학과 후배들도 많았다.
그런데 웬걸!
그해 갓 입학한 신입생 여학생 한 명이 유난히 영광이의 눈길을 끌었다. 늘씬한 몸매에 꽤 귀여운 얼굴, 게다가 100미터를 토끼처럼 빠르게 잘 뛰었다. 남학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특히 연애에 굶주리다시피 한 선배 남학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영광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운동회가 끝난 뒤 외국어학부의 저녁 만찬회가 열렸다. 영광이와 그 여학생은 각각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운동회 공신’으로서 학생들의 열렬한 칭찬과 주목을 받았다. 영광이는 여러 교수님과 학생들이 따라 주는 축하의 맥주잔을 거의 사양하지 않고 비우다 보니 어느덧 알딸딸하게 취해 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바로 그때였다.
100미터 경기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그 후배 여학생이 해죽거리며 영광이에게 먼저 다가왔다.
“선배님, 한잔 건배하시죠.”
‘이거 웬 떡이 저절로 굴러들어 왔네!’
영광이는 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취기가 확 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신사다운 선배의 어조를 유지하며 슬쩍 칭찬을 건넸다.
“오늘 참 잘 뛰던데?”
그러면서 은근히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 여후배는 얼굴에 홍조를 살짝 띠며 애교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배님도 너무 멋지셨습니다.”
아무리 봐도 자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오늘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
영광이는 큰마음을 먹고 말을 꺼냈다.
“혹시 만찬회가 끝나면 같이 나가서 산책이나 할까?”
그런데 뜻밖에도 그 미모의 여후배는 흔쾌히 승낙했다.
영광이는 만찬회가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일 분이 어쩐지 십 년처럼 느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함께 재미있게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주고받던 동창 녀석들마저 이제는 괜히 눈꼴사나워 보였다.
드디어 만찬회가 끝났다.
식당 문을 나서니 아니나 다를까, 벌써 그 여후배가 생글생글 웃으며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하느님이시여! 조상 팔대가 무슨 좋은 업을 쌓았기에 이런 복을 저에게 내려 주시는 겁니까!’
둘은 처음에는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어정어정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까요?” 그녀가 문득 침묵을 깨뜨리며 물었다.
영광이는 넋을 잃은 채 걷다가 얼결에 식당에서 가까운 식물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둘은 한밤중의 공원을 향해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며 마치 오래된 연인이라도 된 듯 걸어갔다. 한참을 거닐다가 으슥한 숲길이 나타나자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몇 분 동안 감돌았다.
그때였다. 불현듯 영광이의 가슴속에서 술기운과 함께 그녀의 매혹적인 입술을 향한 충동이 불길처럼 솟구쳤다.
‘정상적인 사나이라면 그 나이에 누구라도 이런 생각이 들 법하지 않은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영광이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미처 제대로 반응할 틈도 없이 첫 키스를 허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놀란 듯 영광이를 밀어내던 그녀도 잠시 후에는 마음을 놓은 듯 조용히 그 키스를 받아 주었다. 참으로 여자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 영광이는 진한 첫 키스만으로도 크나큰 만족감을 느꼈다. 여자의 가슴을 만진다든가 그 이상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당시의 영광이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데이트를 마치고 그녀를 기숙사까지 바래다주던 중이었다. 영광이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까 자기 가족을 소개하면서 말했던 성씨가… 혹시 나와 같은 성씨 아니었나?’
영광이는 모르는 척 태연한 얼굴로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청천벽력이었다.
아뿔싸! 같은 조상이었다!
첫사랑은 그렇게 하룻밤의 키스로 싱겁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예전부터 집안에 같은 성씨를 가진 여성을 절대로 며느리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불호령을 내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광이의 첫 키스는 아름다운 추억과 씁쓸한 반전만을 남긴 채 끝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공원」은 영광이의 인생에서 묘하게 특별한 장소가 되어 버렸다. 아마 그날의 ‘공원행’이 계기가 되었던 것일까? 영광이는 훗날 여자를 만날 때마다 자꾸 공원으로 데리고 가는 버릇이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