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대학 동창회에서 만난 여동창」 —현란한 입기술
어정쩡하게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어느덧 영광이도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4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문화대혁명 시절의 왕홍문」처럼 씩씩하고 멋지던 영광이도 세월 앞에서는 「서리 맞은 뱀」처럼 어쩔 수 없었다.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새치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평소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하는 습관은 여전했다. 저녁이면 꼭 집 근처 공원을 산보하는 습관도 꾸준히 지켜 왔다.
덕분에 동년배 남자들에 비하면 체력만큼은 아직 자신 있었다. 문제는 체력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영광이는 여전히 여자만 보면 마음이 움찔거리고 아랫도리가 꿈틀거렸다.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보고 늘 놀려 댔다.
“저놈은 김칫독에 치마를 씌워도 덮칠 놈이야!”
영광이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허허 웃었지만, 사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위챗이 한창 보급되면서 유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챗을 이용하여 소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각종 동창 단체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위챗이 생기기 전에는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지내던 사람들도 위챗만 생기면 갑자기 서로 가까워졌다. 집안의 결혼식, 부모님의 환갑잔치와 장례식, 아이의 첫돌과 성학연(중·고등학교나 대학 입학 축하연)까지,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단체방에 소식이 올라왔다.
연변에서는 위챗이 나오기 전부터 「한 달에 버는 월급보다 경조사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위챗이 생긴 뒤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한국이나 일본은 물론이고 저 멀리 미국에 가서 살아도 인터넷만 연결되면 동창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창회도 활성화되었다. 회장을 뽑고, 조직부장에 오락부장도 뽑고, 동창회 회칙까지 만들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영광이네 대학 동창들도 위챗에서 야단법석을 떨던 끝에 드디어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동창생 가운데 가장 잘나가는 한 명이 경영하는 호텔에서 정식으로 동창회를 열자는 것이었다. 날짜가 정해지자 동창들은 하나둘씩 약속 장소인 연해 도시의 그 호텔로 모여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무려 20년 만이었다. 다들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영광이는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당시 교수님들도 서너 분이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주셨으니 더욱 뜻깊은 자리였다.
20년 만에 만나는 동창들이었으니 만나자마자 난리도 아니었다. 대학 시절 남학생들 앞에서는 그렇게 수줍어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여학생들도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한두 명씩 낳고 살다 보니 예전의 수줍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남학생들을 상대로 거침없는 농담을 던지는 쪽은 여자 동창들이었다. 남자 동창들이 오히려 방어 태세를 취해야 할 정도였다.
연회가 무르익으면서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알코올의 작용인지, 아니면 나이의 부작용인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고 껴안으며 잔을 주고받았다.
1차가 끝나자 2차는 호텔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교수님들은 제자들이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먼저 자리를 피해 주셨다.
남은 것은 중년의 대학 동창들뿐이었다. 술이 약한 몇몇은 이미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객실로 실려 갔다. 결국 노래방에 남은 사람들은 술이 세거나, 노래를 잘 부르거나, 아니면 무엇보다 놀 줄 아는 몇몇 동창들뿐이었다.
그 가운데 대학 시절 유독 영광이를 잘 따르던 미향이가 있었다. 1차부터 미향이는 기어코 영광이와 교배잔을 하겠다며 우겼다. 그리고 2차 노래방에 오자 이번에는 다른 동창이 부르는 한국 가요에 맞춰 영광이에게 부르스를 추자고 졸랐다. 둘은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교춤을 췄다. 그런데 노래가 2절로 넘어가고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몸을 살짝 기대며 부르스를 추기 시작했다.
영광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래서 선배들이 동창회는 「변상적인 카라오케 모임」이라고 했구나.’
두세 곡을 그렇게 함께 추고 나니 오래전 대학 시절의 추억까지 하나둘 떠올랐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옛정은 묘하게 남아 있었다. 둘 다 어느 순간부터 오늘만큼은 ‘굴레 벗은 망아지’가 되어 마음껏 자유롭게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미향이였다.
“내일 동창들이 시내 관광 나간다면서?”
“그렇다더라.”
“우리 둘은 살짝 빠져서 따로 움직일까?”
영광이는 잠시 미향이를 바라보았다.
대학 시절에는 여자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함부로 손 한 번 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둘 다 이미 결혼했고, 아이들도 하나둘씩 키워 낸 40대 중반이었다.
‘이제 와서 무서울 게 뭐 있겠나.’
영광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다음 날 아침, 동창들 대부대는 관광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떠났다.
그런데 영광이는 갑자기 전날 과음한 사람처럼 행동하며 객실에 남았다. 그리고 미향이의 연락을 기다렸다.
미향이 역시 오랫동안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다가 마침 이번에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숙모가 이 도시에 살고 있어서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대 놓았다.
두 사람은 호텔 로비에서 조용히 만났다. 하지만 동창들이 묵고 있는 호텔 객실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룸메이트들이 일찍 관광을 끝내고 돌아올 수도 있었다.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둘은 결국 다른 호텔을 찾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담한 호텔이었다. 두 사람이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자 20년 동안 묻어 두었던 옛 감정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처럼 두 사람은 뜨겁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날만큼은 동창회도, 내일의 관광도, 집에 있는 가족도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듯했다.
둘 다 이미 인생의 산전수전을 어느 정도 겪어 온 나이였다. 젊은 시절처럼 서툴고 어색하기보다는 서로의 마음과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읽을 줄 알았다.
그날 영광이를 특히 놀라게 한 것은 미향이의 예상 밖의 적극성과 현란한 입기술이었다. 혀가 살살 감기는 키스부터 시작해서 성기를 절주 있게 빨아 대는 ‘펠라티오’는 그야말로 비디오에 나오는 AV 배우를 뺨칠 수준이었다. 조그마한 입속에 들어간 영광이의 남근은 절반도 채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꽉 찼고, 그녀는 왼쪽 볼과 오른쪽 볼을 절주 있게 움직이며 영광이의 남근을 후벼 댔다.
아, 아…… 비명 소리도 절주 있게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영광이의 귀를 자극했다. 드디어 쿵더쿵, 쿵더쿵, 물레방아를 거세차게 두 번 찧고 나서야 둘은 비로소 땀을 식히고 있었다.
젊어서는 서너 번도 별로 쉬지 않고 해 댔지만, 마흔이 지나니 영광이도 나이를 속일 수 없는지 두 번을 하는 데도 발톱을 바짝 세우고 혼신의 힘을 다하려고 악을 썼다. 해 나른한 게 더 이상은 무리였다.
항상 자신의 고추를 「손오공의 여의봉」에 비기면서 자신감이 컸었는데, 오늘은 실력 발휘를 조금 했을 뿐 기대치에 비하면 어쩐지 부족했다. 아직도 자신을 20대처럼 착각하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후줄근해진 영광이의 조로봉태같이 축 늘어진 고추를 보물처럼 눈여겨보면서 조그마한 손으로 요리조리 비틀어 보기도 했다.
“요건 원래 내 건데.”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영광이는 문득 대학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야, 너 대학 때 기억 안 나?”
“뭘?”
“내가 너희 집에 몰래 가서 데이트도 하고, 뽀뽀도 하고 그랬잖아.”
미향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그래가 아니라! 내가 그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네가 못 하게 했잖아.”
“내가 그랬나?”
“그랬지! 옷 밖으로만 만지게 하고,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했잖아. 벗으면 결혼해야 된다고까지 해서 내가 얼마나 겁먹었는데!”
미향이는 잠시 영광이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깔깔 웃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영광이는 어이가 없었다.
“야! 네가 그러고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녀는 끝까지 모르는 척했다.
마치 자기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웃었다.
영광이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역시 여자는 귀엽고도 무서운 요물이야!’
그날 두 사람은 20년 전 대학 시절의 풋풋했던 기억과 40대 중년이 된 지금의 자신들을 번갈아 떠올리며 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세월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20년이 지나도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남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영광이는 그날 비로소 깨달았다.
대학 동창회란 단순히 옛 친구를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되찾는 자리였고,
누군가에게는 잊었던 감정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으며,
영광이에게는…… 또 하나의 「실전 이력」을 만드는 자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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