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첫 경험 — 타지에서 만난 고중 동창생 「해변의 여인」

조용필의 노래 「해변의 여인」을 들을 때마다 영광이에게는 대학 시절의 한 여인이 떠오른다. 그러면 영광이는 지금도 씨익 웃으며 혼자 너털웃음을 짓곤 한다.

 그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마다 영광이는 마치 개 잡은 포수라도 된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 역시 그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탓에, 이제는 웬만한 대목은 거의 외울 정도다.

 더 우스운 것은 영광이가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치 난생처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흥분해서 생동감 넘치고 진지하게, 침까지 탁탁 튀기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차마 중간에 끊을 수도 없었다.

 그 덕분에 이제는 내가 직접 겪은 첫 경험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진짜로. ㅋㅋ

 영광이는 대학 시절 여름방학만 되면 중국의 옛 수도들을 찾아가곤 했다. 그곳에 사는 친구의 셋집에서 한 달가량 함께 지내면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이드라고 해 봐야 버는 돈은 코딱지만 했지만, 그것으로 친구들과 매일 술을 마시고 어울려 노는 재미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영광이는 그 재미에 빠져 여름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그 도시를 찾아갔다.

 그 시절 남자 대학생들에게 방학이란 대체로 그랬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여행하며 젊음을 만끽하는 것. 공부 따위는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대학 시절은 참으로 근심 걱정 없이 마음껏 활개 치며 놀았던 ‘호시절’이었다.

 바로 그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던 영광이는 어느 날 타지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생 최 씨를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녀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공부도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수수하고 조용한 친구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수수했던 시골 여학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세련된 도시 처녀가 되어 있었다. 옷차림도 한층 세련되었고, 은은하게 풍기는 외국 향수 냄새도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늘씬한 다리도 영광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안경도 라식 수술을 받았는지 벗어 버렸다. 예전의 촌스러운 검은 테 안경 대신, 촉촉한 눈매가 영광이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 역시 진하지 않았다. 티가 날 듯 말 듯 재치 있게 꾸민 얼굴이 오히려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타향에서 뜻밖에 만난 두 사람은 너무나 반가웠다.

 “야, 너 정말 많이 변했다!”

 “너도 많이 변했네.”

 그날 두 사람은 첫 잔부터 맥주잔을 시원하게 비우며 회포를 풀었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부터 서로의 근황까지, 술잔이 오갈수록 웃음소리도 커졌다.

 결국 두 사람은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분위기도 한층 묘해졌다. 평소라면 여자 앞에서 얌전하기만 하던 영광이도 그날만큼은 조금 달랐다. 주점에서 나오면서 그는 슬쩍 그녀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그리고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녀를 자기 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그녀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런데 웬걸. 그녀의 표정은 싫지 않은 듯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영광이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타지였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든 말든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본래 사랑에 빠진 남녀에게 세상은 작아 보이는 법이다. 게다가 그날은 술까지 거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광이는 이미 공원에서 첫 키스라는 경험까지 쌓은 뒤였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대담해졌다. 그는 자신의 혀를 냉큼 그녀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녀의 혀를 감싸면서 걸탐스럽게 빨아댔다.

 그녀 역시 처음의 당황스러움이 지나가자 영광이의 행동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녀도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듯했다. 허리를 비비꼬며 헉헉 댄다. 참으로 영광이로서는 난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올랐다.

 ‘에라, 이럴 때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완전히 바보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았다.’

 영광이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는 친한 친구가 살고 있던 셋집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영광이가 그날 하필이면 친구 집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젠장!”

 사방을 둘러보던 영광이의 눈에 집 모퉁이에 세워져 있던 도끼 하나가 들어왔다. 그날의 영광이는 평소의 영광이가 아니었다. 이미 이성을 상당 부분 잃은 상태였다.

 ‘오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지!’

 그는 결국 도끼를 들어 자물쇠를 부수고 말았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눈에는 서로를 향한 열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자 영광이에게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여자와의 경험이 부족했던 그는 속옷을 어떻게 벗겨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은 떨리고 마음은 급했다.

 오히려 그녀가 침착하게 상황을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광이에게도 그토록 궁금했던 ‘첫 경험’의 순간이 찾아왔다.

 ‘으흥!’

 너무나 따뜻하고 짜릿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가운데 모든 것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흥분이 절정에 이르자 그녀도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영광이를 올라타고 긴 머리를 뒤로 확 젖히는 모습에 영광이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너무도 짜릿하고 좋았던 탓에 그는 미처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채 이내 사정하고 말았다.

 운동으로 단련된 영광이였지만, 그날만큼은 체력보다 긴장과 설렘이 훨씬 더 컸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날 영광이의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푸르른 바다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긴 머리카락을 뒤로 확 젖히던 한 여인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마치 조용필의 노래 속 장면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날의 경험은 그렇게 영광이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훗날 술자리에서 조용필의 「해변의 여인」이 흘러나오기만 하면 영광이는 어김없이 그 대목을 따라 불렀다.

 그에게 「해변의 여인」은 단순한 옛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풋풋했던 대학 시절과 타지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과의 추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남자가 되어 가던 어느 여름밤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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