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울며 겨자 먹기로 맺은 백년가약 — 잘못 건드린 「소캐바지 직원」

2년 동안 동부 연해 도시의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해 오던 영광이는 대학 시절 전공이 외국어였던 탓에 이공계 연구를 주로 하는 연구소에서는 할 역할이 그리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앞날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개혁개방의 거센 물결 속에서 주변 사람들은 보란 듯이 백 위안짜리 인민폐를 묶음째로 벌어들이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기껏해야 한 달에 3~4백 위안 정도의 월급에, 부업으로 일본인 관광객 가이드를 하면서 버는 팁이 전부였다.

 국제무역에 관심이 많았던 영광이는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철밥통이기는 하지만 전망도 여유도 별로 없는 국가연구소를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남방의 연해 도시로 하해(下海)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친구의 소개로 모 일본 대기업에 번역직으로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영광이의 인생은 국가연구소에서 일본 기업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일본 기업에서 번역과 통역 업무를 하면서 영광이는 회사 제품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면서 품질관리와 인적자원관리 같은 업무도 하나둘씩 터득해 나갔다. 3년째 되던 해에는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었는지 과장 직무를 맡게 되었고, 5년째가 되자 어느덧 부장 중임까지 떠맡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빠른 승진이었다.

 회사 내부에서 영광이는 사장부터 일반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두루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대학 본과까지 졸업한 사람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본과를 졸업했고, 인물도 훤하고 체격도 반듯했으며 성격까지 온화했다. 웬만한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리는 성격이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결혼한 아줌마들까지 쉬는 시간이면 영광이를 찾아와 가정사며 부부간의 애로사항이며 자식 문제까지 이것저것 털어놓곤 했다.

 그런데 영광이를 가장 많이 찾아온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직 시집가지 않은 처녀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돈을 벌러 내지나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여자들이었다. 어떤 처녀는 저녁에 퇴근하면 영화 보러 가자고 꼬셨고, 어떤 처녀는 주말에 디스코장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 많은 여자들 가운데 영광이의 눈에 유독 들어오는 한 여자가 있었다. 말수가 많지 않고 조용했으며, 차근차근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노동자였다. 그녀는 해마다 개근생으로 뽑혔고 우수노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의범절도 깍듯해서 누가 보아도 싹싹하고 성실한 아가씨였다. 비록 노동자 신분이었지만 회사에서는 현지 중국인 경리의 업무를 보조하는 일도 겸하고 있었다.

 그녀는 영광이만 보면 언제나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업무 중 모르는 것이 생기면 가장 먼저 영광이를 찾아왔다.

 “부장님, 요것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그럴 때마다 영광이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목소리도 살짝 깔고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해 주었다. 주로 제품과 관련된 일본어 전문용어를 물어왔기 때문에 영광이도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것이 나오면 사전을 찾아본 뒤 다시 알려 주곤 했다.

 그렇게 둘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퇴근 후 저녁을 같이 먹은 적도 몇 번 있었다. 식사를 먼저 제안한 쪽은 늘 영광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연말이었고 보너스도 제법 두둑하게 받았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혼자 보내기에는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사실 그녀의 외모는 수수한 편이었다. 키도 작고 체격도 말랐으며, 특별히 미인이라고 할 만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영광이는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영광이를 거의 혁명도사처럼 존경했다. 대학생 출신에다가 일본어도 잘하고, 회사에서는 부장이라는 직책까지 맡고 있는 영광이에게 그녀가 보내는 존경심은 남달랐다.

 그런 그녀와 함께 있으면 영광이는 자신이 꽤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관리자라는 자신감과 대학 졸업생으로서의 묘한 우월감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결국 영광이는 그녀를 조용히 복도로 불러냈다.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다른 약속이 없으면 나하고 같이 식사하고 영화나 보러 가는 게 어떻소?”

 그녀는 뜻밖의 제안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곧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말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기뻐했다.

 “네…… 좋아요.”

 그날 이후 둘은 조금씩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세 번 만나고……. 그렇게 만남이 잦아지면서 서로에게 이성적인 호감도 서서히 쌓여 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영광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워 두고 있었던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앞으로 출세하려면 지식도 있고 경제력도 든든한 남편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젊은 나이에 잘나가던 부장 영광이는 꽤 괜찮은 목표물이었다.

 물론 그녀도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학력도 높지 않았고, 노동자 신분이었으며, 외모와 체격도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이런 나를 과연 저 사람이 좋아할까?’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정한 이상 서두르지는 않았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조금씩 마음을 열게 하고, 조금씩 영광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말하자면 야금야금 목표물을 향해 덫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런 속사정을 영광이가 알 리 없었다. 그저 자신을 잘 따라 주고 존경해 주는 그녀가 고맙고 귀여웠다.

 처음에는 ‘도와주어야겠다’는 동정심에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이성에 눈을 뜬 영광이는 밤만 되면 여자가 그리워지는 나이였다.

 그날도 영광이는 그녀를 데리고 분위기 좋은 서양요리점으로 갔다. 레드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으며 기분을 한껏 낸 뒤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일부러 일본 공포영화를 골랐다. 공포영화에는 남녀가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영광이도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서운 장면이 나오자 그녀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영광이의 팔을 꼭 붙잡았다. 두 눈도 질끈 감았다.

 영광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호라…… 이거 기대했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는구나.’

 그는 슬며시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런데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영광이는 용기를 내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날의 영화관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 놓았다.

 영광이는 속으로 환호했다.

 ‘이거 또 웬 떡이냐!’

 그러나 사실 그날 진짜 올가미에 걸린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어느 정도의 결과를 예상하고 영광이를 따라나섰던 것이고, 영화관에서도 나름대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영광이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듯했다.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녀를 차에 태우고 호텔로 향했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 보면 영광이는 한 가지가 늘 궁금했다. 그날 그녀는 처녀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순순히 자신을 따라 호텔까지 갔을까?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날 홀린 사람은 어쩌면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의 인연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어느 날 그녀가 조용히 영광이를 불렀다.

 그리고 아주 뜻밖의 말을 꺼냈다.

 “저…… 임신했어요.”

 영광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거 어케 하지?’

 평소에는 무슨 일이든 자신만만하던 영광이도 그 순간만큼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며칠 뒤에는 더 큰 폭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오신다는 것이었다. 영광이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영광이는 비로소 상황이 어디까지 와 버렸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게 영광이는 결국 「성급한 무면허 속도위반」의 후과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 예쁘지도 않은 노동자 출신의 「소캐바지 시골녀」와 울며 겨자 먹기로 백년가약을 맺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인생에서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의 계약서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지금도 영광이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나라 잃은 백성처럼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

 세상에는 예쁘고 성격도 잘 맞으며, 얼큰한 우리 민족 김치도 척척 담그고, 술 한잔하고 나면 시원한 해장국까지 끓여 주는 조선족 여성들이 많고도 많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은 왜…….

 “아이고, 내 팔자야. 휴우…….”

 가끔은 술김에 이렇게까지 말한다.

 ‘확 그냥 아래 동네를 잘라 버릴라!’

 물론 그것이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결혼하고 나서 영광이에게 또 하나의 큰 시련이 생겼다.

 바로 술 문제였다.

 영광이는 원래 맥주를 좋아했다. 특히 남방의 더운 날씨에 퇴근하고 돌아오면 맥주 한두 병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런데 한두 병이 어느새 서너 병이 되고, 네댓 병을 마셔도 끄떡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먼저 도수가 높은 배갈을 두 냥 정도 들이켜고 맥주를 두 병씩 마시는 습관까지 생겼다.

 문제는 가족들이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족 남자들 가운데에는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니 아내부터 시작해서 장인, 장모, 심지어 어린 딸년까지 영광이만 보면 한마디씩 했다.

 “술 좀 그만 마셔!”

 “또 마셔?”

 “오늘도 마셔?”

 영광이는 속으로 ‘에라, 밥상을 확 엎어 버리고 싶구나!’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러지도 못했다. 평소에는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고, 밤이면 이불까지 따뜻하게 덮어 주는 아내였다. 그런 아내를 앞에 두고 뭐라고 큰소리를 칠 수 없었다.

 결국 영광이가 선택한 것은 하나였다.

 참자!

 참는 게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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